|
|
나는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혼돈이
정보화ㆍ세계화ㆍ민주화의 시대적 조류에 적응하는 과정의 진통이라고 설명해 왔다. 지금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한국경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기업이 외국 설비와 기술을 도입해 외형 확대를 꾀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자신이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 시장을 개척하는 협곡을 지나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중소기업은 중국 경제의 충격으로 재래 제조업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 그에 대응해 3만 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겼다. 국내에 남아있는 중소기업들은 좀처럼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수출이 경제성장 및 대외신용 유지의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총수출의 75%인 5대 품목의 부품수입
의존도가 높아 내수 유발력이 약하고 지식 및 기술 집약적인 정보기술(IT)산업은 고용유발효과가 작다.
이런 부정적 추세에 기업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오늘의 문제인데, 현 정권은 개혁의 이름으로 개입과 규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정부가 시장경제의
자율 기능을 무시하고 민간 활동에 불합리한 간섭과 규제를 강요하면 역작용이 생긴다는 것이 시장경제 국가들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정부는 이 시기에 시장경제의 자율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시장 기능이 못하는 일(시장 실패), 혹은 정부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시장에 제동을 걸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규제를 혁파해 민간의 자조 노력을 극대화하라는 얘기다.
불황기에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해야 한다. 재활 부조ㆍ직업 훈련ㆍ노인 보호 등 사회 복지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정부의 경제전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얼른 대답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수많은 위원회가 220여 개의 ‘로드맵’을 생산하고 있는데,
정부가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을 골라 그것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경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 국민의 관심과 에너지도 선정된 과제에 집중시켜야 한다.
경제전략으로 과학 기술 정책의 효율화, 부품
소재산업의 개발, 동북아 서비스 중심지 개발, 농업의 기업화와 과학화 등 네 가지 방향을 강조하고 싶다.
이 네 가지 장기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기 어렵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경기부양을 위해 이른바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충청도 공주와 연기를 행정도시로 만드는 것이 반드시 발전전략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차라리 토지공사가 토지채권을 발행해 행정수도 예정지를 전량
매입한 후 기업 도시로 개발하면 충청도와 나라가 다 같이 발전할 뿐 아니라 수도권 인구 분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논쟁이 있는데 이는 부질없는 것이다. 집권 실세 중 누군가가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이더라도 고르게 나누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는데, 경제는 수레와 같아서 구르지 않으면 쓰러진다.
따라서 성장책을 쓰지 않으면 1만 달러 소득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소득이 1만 달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회는 변화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사회 변동에 대처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의 소득
수준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장이 없으면 분배 상태를 개선할 수 없다. 지금은 성장을 통해 실업자를 줄이는 것이 분배 개선의 최우선
과제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 따라 국민이 저임금에서 고임금으로 이동하고, 사회보장 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소득분배 상태가
개선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