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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T SECOND - 신시장을 지배하는 재빠른 2등 전략

position 2006. 4. 5. 13:13

FAST SECOND - 신시장을 지배하는 재빠른 2등 전략

콘스탄티노스 마르키데스 외 지음

리더스북 / 2005년 12월 / 279쪽

 

저자

콘스탄티노스 마르키데스 Constantinos C. Markides : 보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MBA와 DBA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런던경영대학원의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경영전략 및 국제경영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키프로스국제경영연구소의 학술위원회 회원, 경영아카데미와 전략경영협회 회원, 세계경제포럼(WEF)의 특별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전략적 혁신, 사업구조 개선, 다각화 기업의 경영, 전략적 돌파를 위한 창조성, 국제적 M&A 등에 관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와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에 위대한 기업으로 가는 전략 지도, Thinking for the Next Economy(공저)  등이 있다.

 

폴 게로스키 Paul A. Geroski : 런던경영대학원의 학장을 지냈고, 현재는 동 대학원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산업경제학연구유럽협회(EARIE)의 의장과 산업조직학회의 의장을 지냈고, 현재는 왕립경제학회의 자문위원, 영국경쟁위원회의 의장,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전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은 책에는 Market Dynamics and Entry,Innovation, Market Structure and Corporate Performance,Coping with the Recession,The Early Evolution of New Markets가 있으며, 그 밖에 기업 성과, 혁신, 사업 전략, 경쟁 및 독점금지 정책 등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김재문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LG경제연구원 경영연구그룹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에서 여러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년간 실무 경험을 쌓기도 했다. 방송 출연 및 인터뷰와 다양한 매체의 기고 등을 통해 기업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지은 책에 프로기획자의 전략적 사고,e-비즈니스 모델에 맞는 eCRM,2010 대한민국 트렌드(공저)  등이 있다.

 

Short Summary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 즉 푸른 바다와 같은 신시장을 개척하자는 블루오션 전략이 많은 한국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새로운 경영 전략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와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높은 수익과 무한한 성장이 존재하는 푸른 바다에 뛰어들라는 블루오션 전략은 매력적인 제안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블루오션을 찾아낸다고 해서 그곳의 먹잇감을 모두 독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뒤따라온 다른 경쟁자에게 기껏 찾아낸 먹잇감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또 다른 노력과 전략이 필요하다. 즉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바다를 지배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략경영의 세계적인 두 대가가 집필한 FAST SECOND : 신시장을 지배하는 재빠른 2등 전략은 바로 이러한 블루오션의 궁극적인 지배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새로운 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핵심 성공 요인은 빨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이 맨 먼저인 경우는 드물다. 결국 신시장에 들어가 실질적인 주도자, 즉 진정한 마켓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할 최적의 타이밍을 찾아내야만 한다. 지은이들은 이것을 재빠른 2등 전략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재빠른 2등 전략만이 신시장의 창조와 지배를 위한 최적의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틈새시장을 찾아내 대중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한 재빠른 2등 전략과 그 시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유지하기 위한 혁신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치열한 경쟁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기업과 경영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새로운 경영 전략의 필독서이다.

 

차례

옮긴이의 글 - 블루오션을 완성하는 재빠른 2등 전략

PROLOGUE - 왜 재빠른 2등이 되어야 하는가

 

1장 신시장을 창조하는 것과 지배하는 것은 다르다

1. 최초의 시장 개척자들과 근본적 혁신

2. 대기업이 근본적 혁신가가 되기 어려운 이유

 

2장 혁신은 시장을 창조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한다

1. 근본적 혁신의 특징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

2.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근본적 혁신의 프로세스

3. 혁신에 의해 창조된 초기 시장의 기회와 위험

 

3장 새로운 틈새시장을 대중시장으로 확대하는 전략

1. 새로운 초기 시장의 치열한 진화 과정

2. 초기 시장의 진입 러시에 대한 두 가지 수수께끼

3. 초기 시장의 통합과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

 

4장 신시장을 개척하는 전략, 통합하고 지배하는 전략

1. 개척과 통합에 필요한 서로 다른 능력과 태도

2. 개척자와 통합자 사이에 발생하는 몇 가지 충돌

3. 개척과 통합을 동시에 잘하는 것은 어렵다

 

5장 시장을 통합하는 마켓 리더의 다섯 가지 전략

1. 전략 1 : 차별화된 각각의 제품 속성을 강조하라

2. 전략 2 : 밴드웨건 효과를 촉진해 시장점유율을 높여라

3. 전략 3 : 소비자의 위험을 줄이고 신뢰를 확립하라

4. 전략 4 : 신속한 대응을 위한 유통망을 구축하라

5. 전략 5 : 보완재 성장을 촉진하여 시장을 확대하라

6. 어떤 기업이 어떻게 시장을 통합하고 마켓 리더가 되는가

 

6장 신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의 재빠른 2등 전략

1. 재빠른 2등이 될 것인가, 느린 2등이 될 것인가

2. 지배적 디자인의 개발과 정착을 위한 타이밍 전략

3. 재빠른 2등이 누리는 선발 기업의 이점

4. 재빠른 2등이 피할 수 있는 선발 기업의 세 가지 비용

5. 재빠른 2등의 핵심 전략은 차별화된 포지션에 있다

 

7장 지속적 시장 확대와 지배를 위한 혁신 전략

1. 차별화된 전략적 포지션을 구축하라

2. 지속적인 전략적 혁신으로 새로운 경쟁자들을 물리쳐라

3. 새로운 지배적 디자인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라

 

EPILOGUE - 신시장에서 기존 기업이 성공하는 방식

더 읽어야 할 책들

 

 


 

프롤로그 - 왜 재빠른 2등이 되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에 맨 먼저 진입한 기업은 최초 진입자의 이점과 확실한 경쟁우위를 누릴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신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은 맨 먼저 시장에 들어간 기업이 아니다. 신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핵심 성공 요인은 빨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이 맨 먼저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신시장에 들어가 진정한 마켓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할 최적의 타이밍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는 이것을 재빠른 2등 전략(Fast Second Strategy)이라고 부른다. 재빠른 2등 전략은 업계의 표준이 되는 지배적 디자인이 출현하는 타이밍을 알아차리고 최적의 시점에 시장에 진입,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에 참여함으로써 실질적인 선도 기업이 되는 전략이다. IBM이 메인프레임 컴퓨터시장에서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P&G가 일회용 기저귀시장에서, GM이 자동차시장에서 성공한 것도 모두 재빠른 2등 전략의 산물이다.

 

신시장을 창조하는 것과 지배하는 것은 다르다

 

세상에 처음 선보인,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던 개척자는 거의 항상 뒤이어 따라붙은 후발 주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패배했다. 신기한 일이다. 왜 초기 개척자들은 스스로 개척한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른 기업에 넘겨주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최초 진입자들의 규모가 작거나, 보유한 자원이 빈약하거나, 경영 관리 상태가 엉망이어서가 아니다. 게다가 그들의 제품이 뒤늦게 들어온 경쟁사의 제품보다 낮은 수준이어서는 더욱더 아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근본적 혁신(Radical Innovation)이다. 혁신이 근본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혁신이 기존 소비자의 습관이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둘째, 새로 창조된 시장은 기존 경쟁자들이 성공의 발판으로 삼았던 역량이나 자산을 무력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혁신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각 혁신이 가져오는 효과는 서로 다르다. 이 책에서의 혁신은 오직 근본적 혁신만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근본적 혁신만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이기 때문이다. 근본적 혁신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엄청나게 큰 효과가 있는 혁신이다. 이러한 혁신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과학적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소비자로부터 새로운 행동을 이끌어내며, 기존의 경쟁자에게는 거대한 도전이 된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자동차는 근본적 혁신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사실 보다 혁신적이 되고 싶지 않은 기업이 어디 있겠으며,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신천지를 개척해서 가슴 떨리는 새로운 시장을 찾고 싶지 않은 CEO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대기업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없을뿐더러 창조하기를 원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대기업은 근본적 혁신의 프로세스를 도입할 수 없다. 둘째, 대기업은 근본적 혁신에 필요한 능력(Skill)과 태도(Mind Set)를 갖고 있지 않다.

 

우선 첫 번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 근본적 혁신이 고객의 니즈와 수요에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수요 측면이 아닌 공급 측면에서 유발되는 근본적 혁신 프로세스는 다음의 일정한 네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 근본적 혁신은 고객의 니즈에 바탕을 두지 않고 우연히 나오는 경우가 많다.

- 근본적 혁신은 대부분 독립적으로 일하는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에 의해 나온다.

- 근본적 혁신은 과학자의 개인적인 기술 개발로 시작되지만 다른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 근본적 혁신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긴 숙성 기간을 거쳐서 갑자기 시장에 튀어나온다.

, 이제 스스로 질문을 해보자. 혁신 프로세스는 대기업의 연구실에서 따라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오.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대기업은 근본적 혁신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 그들이 필요로 해서 혁신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배우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기존 사업을 위해 필요한 능력과 태도는 근본적 혁신을 위해 필요한 그것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들이 혁신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그들 조직의 DNA에 이식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 시도는 분명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대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갖추라고 계속해서 충고해왔다. 문제는 그런 다양한 처방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대기업을 찾아보기는 쉽지가 않다는 데에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태도는 그 시장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능력 및 태도와 다를 뿐만 아니라 충돌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시장 창조에 필요한 능력을 기존 기업의 조직 내부로 이식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기존 대기업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것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돈이 되는 것은 새로운 사업을 강화하고 키워나가는 일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기존 대기업들은 굳이 돈이 안 되는 새로운 시장 창조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또 하나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새로운 시장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시장을 발견해야 한다거나, 새로운 시장을 키우고 지배한 기업은 바로 그것을 발견한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기존 대기업들에게 필요한 조언은 새로운 시장을 어떻게 창조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키우느냐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장에 관한 잘못된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지 못한다면 남들보다 먼저 그 시장에 진입하면 된다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는 것은 기존 기업들에게 해가 되는 잘못된 조언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들은 시장이 일정한 규모로 커져서 그들이 주목받기도 전에 빨리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새로운 시장 개척의 영광은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와 새로운 시장을 대중시장으로 키운 후발 기업이 가져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에디슨이 전구시장을 개척하고, 질레트가 면도기시장을 개척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는 전혀 진실이 아니다(최초의 전구는 독일의 시계제조업자인 하인리히 괴벨이, 최초의 전기면도기는 미국의 육군대령 제이콥 쉬크가 발명했다).

 

혁신은 시장을 창조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한다

 

근본적 혁신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근본적 혁신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파괴적이라는 점이다. 근본적 혁신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소비자들은 이들 제품과 서비스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배워야만 한다. 또한 소비자들은 기존의 습관을 버려야 하고 구매 및 사용패턴도 바꿔야 한다. 가끔은 새로운 제품의 사용 방법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변화의 장애 요인들은 점진적 혁신보다는 근본적 혁신의 경우 훨씬 더 높게 나타나기 마련이고, 경제학에서는 이를 전환비용(Switching Cost)이라고 부른다. 생산자에 대한 영향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전환비용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생산자의 부가적 비용을 조정비용(Adjustment Cost)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본적 혁신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신제품은 완전히 새로운 가치사슬을 갖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가져오는 근본적 혁신은 새롭고 낯설게 마련이다. 따라서 혁신의 이점이 무엇이냐를 평가하는 것은 생산자나 소비자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반면 리스크는 훨씬 직접적이고 누구나 평가하기 쉽다. 그래서 혁신에 대한 초기의 반응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내세워 성공하겠다고 진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어느 기업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근본적 혁신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 변화의 이점을 조기에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 변화를 행동으로 옮겨야 할 동기부여 요인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우리 삶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근본적 혁신이 고객의 니즈나 수요에 의해 유발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그 제품이 생산된 후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가 오는 긴긴 밤이면 엄청난 무료함을 느꼈을 19세기 가족들을 생각해보자. 이들 중에서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텔레비전이 발명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었겠는가. 무엇보다 수요가 근본적 혁신의 주된 요인이라는 주장은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들이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 앞에서 힘을 잃는다. 사실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신제품이 개발돼 나왔다면 어떻게 실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가끔은 소비자나 사용자가 혁신을 촉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근본적 혁신의 주된 요인이 사용자가 아니라면, 이러한 혁신은 공급자에 의해 시장으로 나왔음이 분명하다. 즉 대부분의 근본적 혁신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연구개발의 성과물인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포스트잇, 비아그라 등의 개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신기술이 단지 운이 좋아서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주관적인 짐작이나 단순한 우연, 행운에 의해서 나온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갖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이런 혁신도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이것을 경제학자들은 기술의 궤적이라고 부른다. 기술의 궤적은 특정 주제나 영역에 대해 연구하는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기본적인 전제와 가정, 그리고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새로운 기술은 수요 측면과 관련이 없는 기술의 궤적을 따라서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 혁신의 핵심 유발 요인이 공급 측면에 있다고 해서 혁신 프로세스에서 수요가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수요의 힘은 근본적 혁신에서 세 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수요는 연구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소비자의 니즈가 명확할수록 니즈 충족을 위한 새로운 혁신 과정은 자금 등 여러 측면의 지원을 받기 쉽다. 둘째, 수요는 새로운 혁신이 상용화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시장이 확장되고 심화되는 상승기에 혁신 제품이 등장했다. 셋째, 혁신 프로세스에서 수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택이다. 어떤 제품이 살아남을지는 오직 소비자의 선택과 선호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대부분의 근본적 혁신에서 수요가 궁극적인 유발 요인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시장에 등장한 시점에 소비자의 지원 없이 성공한 혁신은 거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운 혁신이 공급 측면에서 나올 때, 그것은 거의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게 나온 혁신은 가능성의 집합에 불과하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갈지는 누구도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이 같은 공급 압력형 혁신에 의한 시장은 진입 장벽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기술만 이해할 수 있으면 진입할 수 있고,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한다. 초기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공급 압력형 혁신이 만들어낸 제품의 다양성을 좁혀나가야 한다. 이때의 선택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기업이 승자가 되고, 제품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나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바로 표준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기 직전의 모습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근본적 혁신은 시장을 만들지만 완성하지는 못한다.

 

근본적 혁신에는 대체 활동이 포함된다. 새로운 제품은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데, 이는 기존 제품이 처음 등장할 때 그 전에 있었던 옛 제품을 대체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우리는 보통 신제품을 대체의 의미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자전거와 마차를 대체했고, PC는 타자기를 대체했다. 사실 새로운 제품이 처음 시장에 나올 때는 틈새시장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시점에는 틈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틈새시장은 아니다. 신제품들은 정신없을 만큼 어지러운 특성을 갖고 있고 타깃 고객도 모호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더 발전되고 제품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제품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몇 개의 핵심 제품 혹은 지배적 디자인만 남게 된다.

 

신제품이 자리 잡은 틈새시장이 대중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재적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사용하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우선 가격이 인하되어야 하고, 다양한 소비자들이 원하는 주변장치나 부가적 혜택들도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신제품은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야 하는데, 이를 사회학에서는 합리화라고 한다. 합리화 과정은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모방심리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신제품들은 틈새시장을 벗어날 수 있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틈새시장에 머물러 있거나 사라지고 만다. 소수의 뛰어난 신제품만이 이러한 초기 틈새시장 단계를 뛰어넘어 대중시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신제품은 그들의 성장 기반이 되었던 기존 시장을 대체해버린다.

 

새로운 틈새시장을 대중시장으로 확대하는 전략

 

공급 압력형 혁신은 시장에 적합한 하나의 제품을 단번에 내놓을 수가 없다. 따라서 초기 시장은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적합 제품을 찾아내기 위한 테스트용이라고 봐야 한다. 즉 자사의 제품이 고객의 니즈에 들어맞기를 바라면서 경쟁사 제품을 몰아내기 위해 새로운 제품들을 계속 출시하는 것이다. 초기 산업의 진화 과정에서 소비자들 또한 학습과정을 거친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을 접하면 쓰임새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간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학습과정을 통해 제품을 구성하는 속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어떤 제품군에서는 부가장치나 주변기기들이 만들어지기 쉽도록 표준 설정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도 한다.

 

새로운 시장에 많은 기업들이 뛰어드는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요인은 정보의 폭포 현상에 의한 것이다. 하나의 기업이 열정을 갖게 되면, 이는 구전을 통해서 다른 기업으로 퍼져나간다. 그 결과는 열정의 거품으로 나타나 새로운 시장의 매력은 엄청나게 과장된다. 두 번째 요인은 인프라의 존재이다. 진입을 희망하는 많은 기업들이 선발 기업들이 닦아놓은 인프라에 무임승차하고자 하면, 선발 기업이 만든 인프라는 단기간 내에 새로운 시장 진입의 발판이 된다. 세 번째 이유는 최초 진입자의 이점이다. 최초 진입자의 이점은 최초 진입자가 시장의 조건을 능동적으로 바꿈으로써 후발 진입자들이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최초 진입자의 이점이 존재하고, 또 중요하기까지 하다면 다른 기업보다 먼저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래서 후발 기업은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마련이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다른 지역의 유사한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새로운 시장과 수평적으로 관련된 기업이다. 이 기업들은 사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수익 기회를 발견하는 데 능숙하다. 두 번째 유형은 새로운 시장과 수직적으로 관련된 기업들이다. 한편 새로운 기술에 의해 대체될지도 모르는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존 기업들은 흥미로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보통은 자신들의 기존 시장을 잠식하기 전에 싹을 잘라버리는 데 더 관심이 있지만 대체할 것이 확실해지면 그들도 새로운 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유형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기술의 궤적에 관련된 일을 하는 기업들이다. 결국 잠재적인 수익 기회를 알아차리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기술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잘 알고 있는 기업이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한다. 또 매우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에 등장한다. 다양한 기업과 제품은 또 다른 기업과 제품에 의해서 계속 대체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통합 과정이 시작된다. 기업과 제품의 숫자가 갑자기 큰 폭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드는 비율은 완화되지만, 줄어드는 과정은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몇몇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 시장의 대표 제품으로 등장하면서 시장의 통합 작업은 본격화된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포드의 모델 T가 등장하면서 시장 통합 과정이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포드의 모델 T가 특별한 점은 우리가 지금 자동차라고 알고 있는 형태를 정의했다는 것이다. 모델 T 이후에 디자인되고 생산된 자동차들은 모두 모델 T와 닮은꼴이었다.

 

이처럼 모델 T와 같이 중구난방식의 제품에 방향성을 설정하고 시장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제품 디자인을 지배적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은 새로운 시장의 초기 진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제품의 정체성과 핵심적 기능을 규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제품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며 기본적으로 표준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생산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이는 곧 가격 하락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은 그것이 새로운 시장을 정착시키는 결정적 단계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강력한 시장 통합 과정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초기 진입 기업이든 후발 진입 기업이든 간에 지배적 디자인을 만든 회사가 살아남게 되면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퇴출된다. 즉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은 그것을 만든 회사를 제외한 모든 회사에게 죽음을 알리는 선고와도 같은 것이다.

 

자사의 제품이 지배적 디자인이 된 회사는 오랫동안 상당한 수준의 최초 진입자의 이점을 누리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지배적 디자인을 통해 최초 진입자의 이점을 누리게 된 기업들은 대부분 최초 진입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앞에는 새로운 시장의 기반을 다지고 사라져간, 그래서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선발 기업들이 있다. 이때가 되면 경제학자들이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이 발생한다. 네트워크 효과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선택을 함으로써 참여자 모두가 혜택을 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제품은 혹 잘못 선택했을지언정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가장 적은 제품이다. 결국 사람들은 남들이 사는 제품이 자신의 마음에 꼭 들지 않더라도 차선책으로 그것을 구매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남들이 구매하지 않는 독특한 제품을 구매하면, 고장이 나거나 소모품이 필요할 때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배적 디자인은 초기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시장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들은 그들이 정착시킨 지배적 디자인 덕분에 시장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위상을 갖추게 된다. 그들은 경쟁우위를 활용하여 신속하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다. 그 결과 뒤따라 들어오는 경쟁자들은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가치사슬의 전후방을 통합해 가는데, 그 이유는 핵심 자산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브랜드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결국 새로운 시장을 차지한 기업들은 뒤따라오는 경쟁자들이 넘보기 어려운 좋은 평판을 쌓게 된다. 전환비용은 선도 기업이 구축한 네트워크에 의해 생긴다. 또 선도기업의 강한 브랜드도 후발 기업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이다. 어쨌든 최초 진입자의 이점은 후발 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이 된다.

 

최초 진입자의 이점은 단순히 최초라는 시점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움직이느냐보다, 움직일 때 무엇을 하느냐는 점이다. 단순히 시간상으로 맨 처음 움직인 기업이 최초 진입자의 이점을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초 진입자의 이점은 규모의 경제와 학습효과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지만, 중요한 통합화의 물결을 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이점의 진가를 갖는다. 이제 지배적 디자인이 정착된 시장에서의 경쟁은 제품의 근본적인 차별화보다는 세세한 부분의 차별화에서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제품의 사용을 용이하게 해주고, 또한 새로운 제품의 매력도를 높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지배적 디자인의 등장은 틈새시장을 대중시장으로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신시장을 개척하는 전략, 통합하고 지배하는 전략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에 최초로 진입한 기업은 왜 장기적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서기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새로운 발견과 발명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는 그것을 상업화하는데 필요한 능력과 태도와는 판이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능력과 태도는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충돌하기까지 한다. 어떤 기업들은 개척자의 특성이 강하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빨리 효율적으로 찾아내고, 단순한 기술적 가능성을 소비자 니즈에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즉 이들 기업의 강점은 새로운 틈새시장을 만드는 데 있다. 한편 어떤 기업들은 통합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다듬어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고,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통해 대중시장으로 퍼트린다. 그 결과 시장은 재구성된다. 그러나 개척자의 특성과 통합자의 자질을 동시에 가진 기업은 매우 드물다.

 

상충되는 능력과 태도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는 대부분 불일치와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 말하면 개척자와 통합자로서의 두 가지 능력과 태도를 모두 확보하려고 하는 기업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개척자와 통합자가 충돌하는 현상은 다음의 세 가지 영역에서 나타난다.

 

가장 심각한 충돌은 문화적 측면에서 발생한다. 개척자들은 기술에 집착한다. 그들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최고의 기술적 연구성과다. 반면 통합자들은 대중시장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성능을 갖춘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품질이나 기술보다 가격에 있다. 문화적 충돌은 개척자와 통합자의 야심과 목표 차이에서도 발견된다. 개척자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 요인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작고 민첩한 조직에 남아 기술적인 성취를 얻고 싶어 한다. 반면에 통합자들은 돈을 버는 일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큰 조직의 구조와 제약 조건 속에서 일하는 것을 행복해하는 유형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함께 일하기 어렵다. 하나의 조직이 이러한 양 극단의 조직문화를 동시에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개척자와 통합자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충돌하는 것은 능력과 태도뿐만이 아니다. 조직의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도 차이를 보이고 충돌한다. 개척자는 위계적 통제가 없는 수평적 조직을 필요로 한다. 또 재무 및 운영 측면의 통제가 느슨한 유연한 기획 프로세스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통합자는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투명한 업무 분장에 기반을 둔 관료적 조직을 필요로 한다. 또한 개척자들은 프로젝트팀 스스로 가장 좋다고 판단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반대로 통합자들은 프로젝트팀이 하는 일이 회사 전체 구조에서, 또 제휴사와의 관계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도록 강제한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구조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것인지를 우리는 겨우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세 번째 충돌은 회사가 시장 개척에서 시장 통합으로 나아갈 때 자원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가 커질 뿐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와 갈등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기존 제품으로 신중하게 사업을 성장시켜온 기업들에게 근본적 혁신은, 기존 시장을 잠식하고 기존 기업들의 우월한 능력과 강점을 훼손시키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때문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사소하고 무모하며 불확실하고 이익이 낮은 사업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기존 기업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주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이 기존 기업에 의해 개척되는 경우가 드문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혁신을 도입하는 기업은 보통 신생 기업이거나 소규모의 시장 진입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원하는 기존 기업들에게 가능한 선택은 무엇일까? 우선 가장 흔한 선택은 개척자의 능력과 태도를 배우거나 갖추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시도의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아 보인다. 이는 기존의 조직에서 시장 개척과 통합에 필요한 능력들의 결합을 시도할 때는 오직 두 가지 결과 중 한 가지만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선견지명이 있는 극소수의 기업만이 개척과 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뿐 대부분의 기업들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많은 통합자들이 자신의 조직 외부에서 개척 활동을 꾸려나가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개척의 능력이 통합의 능력과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달은 일부 학자들은 기존 기업이 성공적인 개척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단위조직이나 사내 벤처 등의 부서를 만들어 따로 분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방법의 이론적 근거는 단순 명확하다. 두 사업을 계속 분리시켜놓으면 위협적인 신규 사업으로부터 회사의 기존 프로세스와 문화를 보호할 수 있으며, 새로운 단위조직은 모회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문화와 프로세스, 그리고 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분리 전략은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문제와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사업을 별도로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두 사업 간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낼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기존 기업은 혁신 프로세스를 도입하기 어렵고, 초기 개척자는 시장 통합과정에서 대부분 퇴출되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가 있다.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원하는 기존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소규모 신생 기업들에게 개척이라는 과제를 위임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대기업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키울 때 귀중한 자원과 능력을 사업의 탐색에 사용하는 대신,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모험심 가득한 작은 기업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육성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대안으로 기존 기업은 벤처기업들과 정식으로 전략적 제휴를 맺거나 소수 지분을 보유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시장을 통합할 때가 되면 그 벤처들 중 가장 유망한 최고의 기업이 쌓아놓은 기초 위에서 새로운 대중시장 사업을 착수하면 된다. 이러한 네트워크 전략은 안에서 키우기 전략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주장이 기존의 통념, 즉 기존 기업은 젊은 신생 기업 특유의 문화와 조직구조를 배우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는 과거의 주장들과 상당 부분 다르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오히려 과거의 주장들이 상당히 잘못된 제안이다. 그것은 70세 노인에게 다음 올림픽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한 훈련법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다. 결국 기존 시장의 리더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 대한 집중이다. 그리고 틈새시장에서 도출된 새롭고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가치 있는 새로운 대중시장에 통합하는 일이다.

 

신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의 재빠른 2등 전략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장이 모습을 드러낼 때 무조건 빨리 그 안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로, 새로운 시장으로 들어가는 선발 기업은 시장 통합 과정에서 살아남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입증하는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최초 진입의 이점을 믿고 있다.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들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정도만큼도 그 시장을 키우지 못하고 일찍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사실상 그들이 차지해야 할 영광은 뒤에 들어와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장을 대중시장으로 키워내는 기업에게로 돌아간다. 결국 가장 적합한 전략은 새로운 시장에 1등으로 진출하는 것을 피하고 2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후발 기업의 첫 번째 유형은 재빠른 2등이다. 그들은 선발 기업이 들어간 직후에 시장에 도착한 기업들이다. 이들은 재빨리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에, 선발 기업이 경쟁상의 이점을 구축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선발 기업들이 1등의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이들 재빠른 2등 기업들은 더 큰 기회를 얻는다. 사실 재빠른 2등은 아주 능동적이어야 하고, 1등만큼이나 빨리 움직여야 한다. 신기술을 익혀야 할 뿐 아니라 제품 설계, 제조 및 유통 계획, 그리고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결국 재빠른 2등은 1등이 하는 모든 일, 그 이상의 일도 해야 한다. 단지 다른 누군가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빠른 2등 전략의 성공적인 사례가 IBM이다.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초기 개척자들은 정부기관들이었음에도 재빠른 2등 전략을 써서 시장의 지배권을 장악하며 늘 재빠른 2등의 자리를 지켰다.

 

후발 기업의 두 번째 유형은 모방자이다. 모방은 혁신의 면에서 볼 때 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느린 2등 전략이다. 느린 2등 기업들은 시장의 초기 선구자들만큼 신기술의 가능성을 활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저가를 고집하는데, 가끔 값나가는 브랜드에 투자하거나 소매점을 통제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그들은 무임 승차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기회를 이용하면서 시장 구축과 신제품 개발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한다. 재빠른 2등과 마찬가지로 모방 전략 역시 할 일 없는 편한 길은 아니다. 경쟁이 거의 없는 틈새시장이든 저가격을 무기로 하든, 아니면 다른 시장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치 있는 브랜드든, 모방자는 늘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시장의 빈틈을 알아차리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리고 다른 경쟁자보다 조금 더 잘 하려고 애쓴다.

 

재빠른 2등 전략의 핵심은 타이밍인데 이는 새로운 시장에서 매우 맞추기 힘든 요소이다. 혁신적인 신시장의 개발이 전환점을 맞을 때는 지배적 디자인이 출현할 때다. 따라서 재빠른 2등의 게임은 시장에서 지배적 디자인이 될 수 있는 제품을 최적의 타이밍에 내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이 지배적 디자인을 선택할 준비가 되는 때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재빠른 2등은 지배적 디자인이 출현할 때까지 그저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지배적 디자인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중요한 점은 지배적 디자인은 시장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미래에 승자가 되고자 하는 기업들로부터 강제로 시장에 던져진다.

 

지배적 디자인을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방법과 관련된 전술은 다음과 같다.

- 가격 :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 사이에 광범위한 합의를 도출해내야만 한다. 그러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쉬운 방법은 저렴한 가격이다.

- 타깃 시장 : 지배적 디자인을 안착시키고자 하는 기업은 밴드웨건 효과(어떤 사람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현상)를 창출해야만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입소문을 통해 경험과 열정을 나누면서 많은 소비자를 소개시켜줄 초기 소비자들을 구하는 것이다.

- 유통 : 대중시장에 신제품을 안착시키기 위해서 기업은 소비자들이 쉽게 그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이 특정 소매점을 신뢰한다면, 제품을 그 소매점에 입점시키는 것은 신제품이 인정받게 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 제휴 전략 :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쟁 기업들은 지배적 디자인에 합류하고 그 변형 제품들을 생산함으로써 시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게 된 것에 기뻐할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과의 제휴 전략은 경쟁 제품의 숫자를 줄일 뿐 아니라 이미 선택에 대한 결정은 내려졌다는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 확신 : 결국 지배적 디자인이나 표준을 확립하는 것은 상대편의 불안 심리에 관한 문제이다. 이미 결정은 내려졌으며 지배적 디자인이 확실히 출현했고, 그래서 그 시장의 승부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설득시켜라.

 

대중시장을 획득한 재빠른 2등들에게 주어지는 선발 기업의 이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시장에 선두로 진입한 기업이 누리는 이점은 첫 번째로 들어왔다는 사실보다는 그들이 1등일 때 시장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본질적으로 선발 전략은 선발 기업이 시장의 경쟁 조건을 후발 참가자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장애물을 진입 장벽이라고 부른다. 또한 선발 기업은 소비자들을 효과적으로 제품에 고착시켜버림으로써 후발 기업들에게 돌아갈 시장을 축소시킨다. 고착화(Lock-in)는 정도의 문제인데, 보통 전환비용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전환비용이 너무 높아서 손실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경쟁사가 소비자를 유인할 수 없다면, 소비자들은 진정 그 선발 기업에게 고착화된 것이다. 전환비용이 높을수록 확실히 시장 진입의 전망은 어두워진다.

 

일부 전환비용은 집합적이어서 모두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제품의 가치가 더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로부터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세상에서 팩스 기기를 갖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쓸모없는 기계를 갖고 있는 셈이다. 팩스를 보낼 사람도 보내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유지되려면 모든 소비자들이 동일한 상품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집합적인 전환비용은 새로운 진입자들에게 주요한 장애물이 된다. 선발 기업의 이점은 시장의 공급 측면에서도 일어난다. 초기 주자들은 주요 지적재산권과 희귀한 소매점 판매 공간 같은 핵심 자산이나, 고도로 전문화된 노동자와 필수 천연자원 같은 핵심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구매하거나 획득할 수 있다. 이외에도 그들은 학습곡선이 낮아지는 효과를 누리거나 규모의 경제라는 이점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조직들을 갖추는 데도 유리한 입장에 있다.

 

원칙적으로 최초로 움직이면 후발 경쟁 주자들에 비해 수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최초가 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도 크기 때문에, 최초로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 늘 그 값어치를 하지는 않는다. 특히 최초 진입자는 세 가지 유형의 비용을 발생시킨다. 첫 번째는 새로운 시장 창출의 비용이다. 새로운 시장은 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집중적인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한 일이기에 막대한 기회비용을 수반하기도 한다. 두 번째 비용은 위험에 관련된 비용이다. 당연히 제대로 형성된 수요 없이 신기술을 강요한 공급자 주도형 혁신 프로세스에서 기술적인 위험과 시장의 위험은 매우 크다. 세 번째 비용은 약간 미묘하다. 신기술 개발 시간이 짧을수록 비용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급히 시행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늘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재빠른 2등 전략도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 시장의 초기 역사는 지배적 디자인으로 시장을 평정하려 했다가 실패한 기업들의 사체로 어지럽다. 재빠른 2등 전략이 너무 느릴 경우, 이미 다른 기업이 점령한 시장에서 약간의 틈을 놓고 다툴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사방을 죄어오는 선발 주자들에 대항하여 후발 주자들이 쓸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시장에 통용되는 게임의 규칙을 부셔버리는 것, 즉 전략적으로 혁신하는 것밖에 없다. 혁신적 차별화가 주는 이점 없이는 그 어떤 기업도 기존 업계의 리더를 성공적으로 공략하기 어렵다. 특히 지배적 디자인이 이미 출현했고 게임의 규칙이 확립된 시장에 진입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점유율이 바뀌고 기업의 운명이 달라지는 일은 후발 주자가 업계에 통용되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버리는 전략을 도입할 때만 일어날 수 있다.

 

에필로그 - 신시장에서 기존 기업이 성공하는 방식

 

과학자들은 빅뱅 이후 우주의 변화를 알아내는 데 있어서, 초기의 짧은 기간에 나타났던 현상들이 이후에 일어난 거의 모든 현상들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믿는다. 이 책의 기본 전제는 근본적 혁신에 의해 탄생된 새로운 시장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제품 개발이나 신시장 창조 이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는 것이 다음 몇백 년 동안 그 시장에서 일어나게 될 일들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따라서 이 책에서 우리는 혁신적인 새로운 시장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일어난 일들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우주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그런 것처럼, 이는 그 자체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주제를 탐구하는 진정한 이유는 시장의 창조 과정과 초기 발전 단계를 이해함으로써 이후에 그 시장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에 대해서도 대부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를 안다는 것은 그 시장을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대기업에 대한 우리의 조언이 기존의 학계와 현장에서 굳게 믿어오던 방식과는 상당 부분 다른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의 주장이 새로운 시장의 개척과 창조, 현대 기업의 연구개발 조직이 수행하는 역할 등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독자들이 기존의 생각들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문제의식이라도 가지게 되었다면 이 책을 쓴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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