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워지기

역사가 증명하는 생존의 법칙

position 2005. 7. 12. 22:50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보상이 주어진다. 그 보상에 대한 기록이 바로 역사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고 일하고 그 대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급료라는 매개가 존재하고 생산 행위가 일어난다. 이는 현대 역사를 만들어 낸 동력이 되었다. 동서양의 유구한 역사도 깊이 보면 인류가 살아가며 자신의 내부에서 생존의 자원을 발견하고 키워내고 이를 의식주로 바꿀 수 있는 물질과 금전으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는 대부분 정치와 경제를 기록한다. 정치는 곧 소수의 통치자가 일군의 무리를 다스리는 과정이며, 역사 속의 경제는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과정과 결과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소수가 국가와 조직을 경영하는 일종의 기술을,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생존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중국의 고대 사상인 유가, 불가, 도가에서는 한 사람이 개인의 한계를 넘어 작게는 한 조직과 크게는 국가까지 다수를 다스리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보상이 주어진다. 그 보상에 대한 기록이 바로 역사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고 일하고 그 대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급료라는 매개가 존재하고 생산 행위가 일어난다. 이는 현대 역사를 만들어 낸 동력이 되었다.

생명의 가치란 목숨 걸고 어떤 일을 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지는 결과물이다. 단순히 살아 있다는 차원을 넘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생존한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금전으로 교환하는 행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동서양의 유구한 역사도 깊이 보면 인류가 살아가며 자신의 내부에서 생존의 자원을 발견하고 키워내고 이를 의식주로 바꿀 수 있는 물질과 금전으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생명과 생존자원 그리고 자원의 분배법칙 사이에는 3각 관계가 형성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더 기울이거나, 타인의 힘을 이용하거나, 혹은 각종 다양한 전략을 고안해 제한된 자원으로 더 많은 대가를 쟁탈하고자 노력해왔다.

역사는 대부분 정치와 경제를 기록한다. 정치는 곧 소수의 통치자가 일군의 무리를 다스리는 과정이며, 역사 속의 경제는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과정과 결과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소수가 국가와 조직을 경영하는 일종의 기술을,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생존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처세법을 터득하기 마련이지만 지혜가 덧붙여지지 않은 처세는 결국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성공하는 처세의 원천은 지혜이며 지혜는 문화에서 나온다. 역사에서 빛을 발하는 권모술(權謀術)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체득하는 간단한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이 문화적인 소양을 습득하려는 노력과 추상적인 개념을 실현하려는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창조되는 고도의 기술이다. 이들은 유년시절부터 철학과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매일 이른 아침 새벽별을 보며 자신을 수양하고 덕을 쌓아 그것으로써 타인을 다스리며 자신의 이득을 타인과 함께 나눈다.' 이 사상을 근본 이념으로 하는 유가(儒家)는 가정과 국가를 다스리기 위한 위대한 지혜의 집대성이다. 유가사상은 정치가들은 물론 일국의 군대를 지휘하는데 까지 널리 이용되었고 유가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조직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마음까지 다스릴 줄 아는 현명한 지도자가 되었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호소하면 본인도 다른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법률에 의거하여 처리한다. 그러나 내가 다른 지도자와 다른 점이라면 범죄가 생기기 전에 우선 예(禮)와 악(樂)으로서 본국에 질서가 잡히도록 하여 백성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데 힘쓴다는 점이다. "

공자는 치국의 방법론을 예악(禮樂)으로 제시했다. 사마천 또한 예악은 백성을 교화시키는 주요한 힘이며 법률은 단지 범죄가 발생한 후에 일을 처리하는 하나의 수단과 판단의 근거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예로부터 치국의 방법에는 표면을 다스리는 것과 근본을 다스리는 유형이 있는데, 법가는 표면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나라의 기강을 잡고자 했던 반면 유가는 근본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백성의 생활을 보살피고자 했던 것이다.

유가의 근본 원리는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키는데 있다. 그런데 사회적 이익에는 반드시 개인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어서 왕도정치(王道政治)는 개인을 희생시킨 사례가 많다.

유가는 특히 '도덕'을 강조하여 단체를 위해 개인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데 효과적인 법적 정신적 근거가 된 셈이다. 유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었던 지도자들이 법(法)이나 군(軍)을 강조했던 지도자들보다 힘들이지 않고 태평성대를 누리게 할 수 있었던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가사상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지도자는 법적 권위나 집행의 강제성을 내세우지 않아도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그들에게 칭송받는 덕치군주(德治君主)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유가의 가치를 이해하고 제대로 체득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힘들일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벌이 꽃을 찾아들 듯 스스로 찾아오게 되며 그들에게 다정한 대화 한마디와 관심을 가져 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보물을 기꺼이 내놓게 된다.

유가가 반만년을 이어온 고전이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학문과 통치 이념으로서 유일하게 '인간미'를 강조하는데 그 근본은 인(仁)이 중심이 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유가에서 강조하는 인술(仁術)의 핵심은 國과 民을 다스리는 것인데 법가와 병가가 법과 무력을 이용한 강제적인 통치라 한다면 유가는 개인이 인격을 수양하고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여(교화) 한 사람의 변화를 유도하여 전체 사회가 변하게 하는 데서 마무리된다. 유가는 법가와 병가와 반대로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개인의 인격수양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유가는 우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을 제일로 삼는다. 수양의 결과는 개인의 범위보다 한단계 위인 가족의 질서와 화목으로 나타나는데 태양열이 복사를 통해 지구까지 온기가 전해지는 이치와도 같다.

한 개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는 개인 수양의 정도와 연결성을 갖는다. 이러한 점이 바로 누구라도 유가사상에 어느 정도는 매혹될 수 있게 하는 장점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평등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어 간다고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자가 백성들을 유가사상으로 자연스럽게 교화할 수 있다면 백성들은 스스로의 일상에 만족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사명을 느끼게 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유가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린다. 무력으로 다스린 자는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으며 힘으로는 절대로 사람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없으나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자는 상대를 기쁘게 만들고 끝까지 희생하도록 한다.

세상을 잃은 자는 백성을 잃어버린 자이며. 백성을 잃은 자는 백성의 마음을 잃어버린 자이다. 천하를 얻으려면 백성을 얻어야 한다. 백성을 얻는데도 도가 있는데 이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마음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특히 유가사상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고, 경험이 체계화된 이론의 형식을 띄고 있다. 유교적 정치가는 항상 자신의 치국행위가 백성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할 것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들이 강남지역에서 많이 배출되었고 강북지역에서는 정치가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강북지역이 비교적 일찍 개방되었기 때문에 문화가 비교적 일찍 발달하였고 사회 제도, 종교 개념이 강남보다 일찍 체계화 되어 성숙한 사회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강북지역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북쪽 지역 사람들은 전쟁에서도 강인하게 싸우는 힘이 있어 중국의 역사적 전환기는 대체적으로 북쪽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북쪽에서 황제가 많이 배출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반면 강남지역은 사회제도뿐만 아니라 종교, 사상 등에 걸쳐 강북지역에 비해 약세를 보였다. 다만 강남지역은 비교적 개방적이고 낙관적이고 자유로웠기에 작가들에게는 명작을 남길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가 풍만했다.

인덕있는 자는 자신의 덕이 준엄하게 쌓이길 희망하고 장엄한 산의 기상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혜가 끊이지 않고 만 천하에 퍼지길 바라며 자유롭게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다시 말하면 물이 흐르는 곳에 지자(智者)가 많았고 산이 많은 대륙 지역에는 인자(仁者)가 많이 배출되었다. 이렇듯 지형이 사람의 성향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자 중에는 정치가가 많고 지자(智者) 중에는 문학가와 예술가가 많다. 문인과 학자는 절대 왕이나 걸출한 장수가 될 수 없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문인과 학자가 배우는 것은 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성현의 도는 사람을 순종시키는 데 있지 사회를 개선하고 개혁하도록 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문인과 학자가 익히는 "도덕(道德)"은 이상 세계적일뿐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서생과 문인은 몸은 서원에 있고 눈과 귀는 모두 문자에 집중될 뿐 현실을 보지 않기에 사회에서 단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열고 현실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일수록 야심만만하고, 이기적이고, 남을 이용할 줄 알고, 타인의 사기에 속지 않으면서도 남을 속일 수 있어야 한다. 변화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고 남에게 모질기도 해야 하며 무능력하고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함은 물론 가슴 속에 독기도 품어야 한다. 선한 마음으로는 오히려 정복되기 십상이다.

반면 학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코 정계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학자는 이상 세계를 제시하면서 권위적인 아우라(aura)를 만들어 가는데 정치가는 현실에 손과 발을 담근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인덕지재는 개국황제가 되지 못한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다. 개국황제가 되는 유형은 하나는 '장수형'이고 하나는 '강력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였다. 물론 고대에는 학자와 문인도 왕에 비해 지위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왕권에 도전하고 반기를 든 계층은 학자층이 아니었다.

사람의 욕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재물과 권력을 움켜쥐는 것, 또 하나는 유명해 지는 것이다. 관직에 오른 사람이나 유명 인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역사적으로 중국인은 관직에 오른 사람을 숭배하는 동시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단지 관직에 있다 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관직에 있으면서 현인이 되거나 성인이 되어야 백성들의 뇌리에 깊게 남고 세대를 뛰어 넘는 위인이 된다. 백성들은 성현을 존경하고 따르며 배우는데 열중하고 학자들은 황제가 되는 것보다 황제의 스승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성현이 되는 것을 학습의 목표로 삼았다.

증국번은 일반인보다 멋지게 유희를 즐겼고, 식도락가였으며 부하들을 마음대로 부리면서도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공(功), 명(名), 리(利), 녹(祿) 네 자를 모두 손에 움켜쥔 인물이었다. 그가 타계하자 그의 오묘한 처세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일군의 무리를 이루었고 심지어는 하나의 학문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증국번은 1811년 중국 호남지역에서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비록 글자를 몰랐지만 호남 지역에서 유명한 지주이자 실세였다. 증국번의 부친은 학문에 뜻이 없어 좋은 가정 환경에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였고 고작 향시에 합격할 정도였다. 3대째인 증국번은 6세에 학문을 시작하여 8세에 사서오경을 마치고 14세에 향시에 합격한 후 22세에 중앙 과거에 급제했다. 28세에 중앙관직에 입관한 후 승승장구하여 37세에 이품관의 벼슬까지 오르게 된다.

그런데 만약 순탄하게 관직생활에만 충실했다면 증국번도 다른 이들과 같이 역사 속의 한 관원으로 묻혀 버렸겠지만 역사마저 증국번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홍수전이 이끄는 농민 봉기인 '태평천국의 난'이 발생한 것이다. 증국번은 자신의 고향인 호남에서 관군을 모집하고 훈련시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재빨리 고향으로 내려가 군을 모집하는데 앞장섰다. 우선 순박하고 건장한 농민들을 징집하여 강도 높게 훈련시키고 용맹스러운 전투병으로 양성해냈다.

동시에 자신의 옛 동창 중 동네에서 존경 받는 학자들을 선발하여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의 위치에 임명했다. 군사들은 존경하는 사령관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어 군대는 일사분란하게 지휘되는 전투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또 부자(父子)지간이나 형제 등 혈육관계의 장정들을 한 부대 안에 소속시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전우애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냈다. 이렇게 조직된 군대는 태평천국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

전통적 유교와 서양의 기술, 인재양성에 만능인 재상 증국번의 이름 앞에 성상(聖相)이라는 칭호가 붙는 이유는 그가 유가에 정통한 사상가이며 실천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자학에 조예가 깊고 독자적인 연구 결과와 새로운 학설도 간간이 발표했다. 그는 학문을 '천지의 운행과 자연 안에 사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최선의 행위'임을 강조하곤 했다. 증국번은 중국이 최초로 서양의 문물을 도입하는 '양무운동'을 주도하면서 서양의 발달한 과학 기술 도입과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설득하기도 했다. 똑똑한 인재는 외국으로 유학보냈고 나라 안에도 교육기관을 만들어 학생들을 선발하여 교육시켰다.

그는 말년에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는 학문 이론을 제기했는데 내면으로는 학문을 닦아 심오한 사상과 품덕을 갖추고 성인을 본받으며, 외면으로는 왕 같은 풍모와 실행력을 지닌 사람이 되라는 이론이다. 증국번은 역사상 자신의 제기한 이론을 직접 실현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스스로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새벽에 일어나 차분하게 명상하는 시간을 갖고 기와 신체를 보호하는 신선한 음식을 먹고, 남는 시간에는 책 읽고 매일 자신을 반성하는 일기를 잊지 않고 썼다. 증국번은 평생동안 "반경작(半耕作) 반독서(半讀書)" 라는 생활 습관을 지켰다.


불교는 사람의 본심을 다스리는 학문이며 특히 선(禪)은 본성으로 다가가는 수련의 일종이다. 수련의 목표는 성불이며 아시아 일대에는 지역마다 성불의 방법이 다르게 나타났다.

부처는 타인이나 외부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불교 신앙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그 본성에 도달하는 수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불가 사상은 사회와 일정 부분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초월하는 것,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과 성불하는 것,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는 것과 성불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모순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불교에서는 부처는 바로 세계이며 바로 자아라는 부처와 자아와의 변증법적인 논리를 강조했다. 중국에 불교를 전파한 6조를 내세워 불교의 지혜는 영적인 곳이 아니라 바로 세속에 존재한 다는 사실을 강조했는데 이는 또 다른 차원의 처세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는 석가모니가 법좌에 앉아 설법을 푸는데 평소와 달리 그렇게 철저한 논리와 엄격한 설법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 말도 없이 단지 손을 들어 한 송이 꽃을 가리킨 것이다. 대중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부처가 가리키는 손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때야 석가모니는 "나의 설법은 오히려 그대들의 눈을 가리고 진정한 법도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진상은 언제나 변하는 것이며 법문은 미묘한 것이어서 불립문자이다. 진실은 마음은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달마의 가르침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아래와 같은 가르침이다.
"나는 본래 흙에서 태어났으며 본인의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인데 이는 꽃 한 송이가 피면 다섯 잎이 돋아 자연이 생겨나는 이치와 같다. 진정한 깨달음은 피-육-골-수의 4경계가 있는데, 피(皮)를 얻은 사람이란 약간의 이치를 깨닫고 경전을 인용할 줄 알지만 여전히 문자를 떠나지는 못하고 경전에 의지하게 되며, 육(肉)을 얻은 자는 경전을 읽은 후 다시 보지 않고 경전을 떠나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경전이 어디에 있는지 늘 주의하는 사람이다. 그는 경전을 의지하지 말아야지 늘 의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전에서 완전히 손을 놓지 못하게 된다.

골(骨)을 얻은 자는 더 이상의 깨달음이 필요 없는 경지이므로 몸과 마음이 자유롭다. 하지만 자신의 깨달음을 여전히 언어를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기록으로 남기려 하고 자신의 기록에 다시 구속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유로워 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절정은 어떤 경지를 말하는가? 최고의 경지는 수(髓), 즉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기 때문이다. 말 대신 해야 할 일에 충실하며 실천으로서 타인을 감화시킨다. '평상심이 바로 도이다(평상심시도, 平常心是道)'라는 가르침과 일치하는 경지가 바로 수(髓)이다."
본래 한가지로 일정한 것은 없다. 이는 불교가 강조하는 깨달음의 원리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삶을 살아갈 때 이는 세상이라는 구체적인 설정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며 "유(有)"라는 존재 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구체적인 시공간은 유한한 것이며 사람이 노력하고 마음 쓰는 방향에 따라 개인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스스로 몸과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면 세상이 변할 것이고 개인에게 있어 완벽한 세상이란 오직 하나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때만 만들어 질 수 있다. 개인의 목표 설정과 노력은 역사의 형상으로 남아 기록될 것이다.

구체적인 시대의 기록으로 시작되는 '역사 기록'은 전반적으로 존재(有)의 기록으로 이루어 지는데 '유(有)'가 얼마나 많은가에 상관없이 늘 부족한 부분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불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유(有)는 역사의 이상적인 경지가 아닌 셈이다. 오히려 역사는 무(無)에서 완성된다. 무(無)는 좋든 나쁘든 늘 사람의 본성에 근접해 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인간성이 불성으로 심화되는 단계에서 나온 말이다. 불성이란 인간으로서의 구체성을 초월하고 인간의 본성으로 충실하게 다가가는 경지를 말한다. 혹자는 불교에서 생명이 끝나는 순간을 '무(無)' 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현실에서 "유(有)"의 구체성과 한계를 이해하고 물상에 개의치 않은 마음이 바로 "무(無)'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지혜를 가장 효과적으로 깨닫고 전달하기 위해 역설법과 반어법을 이용해 왔다. 경우에 따라 경전의 내용은 에피소드의 형식을 취했는데 염화미소에서 시작하여 혜능의 고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작은 이야기의 결합체라고 볼 수 있다. 불교의 교리를 전하는 기본 방식인 에피소드는 짧게는 하나의 짧은 대화에서 길게는 장편의 소설까지 다채로운데 등장 인물의 대화나 성격을 통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지혜를 전달한다. 그리고 화두(話頭)를 제시하고 풀어내는 구조를 취한다. 화두의 상당 부분은 단어의 정의로 되어있는데 정의는 내재에서 외연으로 확대되는 일반적인 사전적 설명의 형식을 띄지 않고 완전한 한편의 시로서 사람들에게 제시된다. 살아있는 언어로 되어 있어 관념적이고 심오한 이치일지라도 한번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화두를 제시할 수 있는 경지는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 도를 깊게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선종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인 혜능이 글자를 몰랐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는 선불교에서 제시하는 "불입문자"의 전형적인 메타포이다. 혜능을 내세워 불교는 문자로 깨달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암암리에 강조하고 있다. 혜능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한 사람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선불교의 도리가 한가지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이유 자체가 바로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플롯이 되는 것이다.


유가가 중국의 사회에서 예절과 관습의 영역을 담당하고, 법가가 법적 질서의 엄격함, 병가가 병법의 냉정함에 근간이 되었다면 도가의 지혜는 중국의 문화에서 가장 지혜로운 부분을 담당한다.

도가의 지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이해한다는 자세에서 나온다. 도는 절대적인 것이며 영원한 것이다. 결코 변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지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으로 사람들은 이를 존중하고 순응해야 한다. 만약 도를 통찰해 내지 못한다면 안다고 할 수 없다. 현실은 여행과도 같고 그 여행길에서 상처를 입을 수도 해를 입을 수도 있는데 도가의 지혜는 추상적이어서 깨달음을 위한 단 하나의 표지판도 세워지지 않는다. 도교의 깨달음이라면 국부적인 지혜보다는 세상 만물 전체의 순환 과정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도교에서는 도를 장악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한번 장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일단 알게 된 다음으로는 자신의 정신 수양과 깨달음을 위한 행위가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도에 순응한다고 하는데 실제상 도에 순응하는 것은 바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의 재능이 이러한 정신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도가에서는 네 가지 방법 허(虛), 정(靜), 일(一), 수(守)를 제시한다. 욕심을 비우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고요한 마음에서 자연이 움직이는 한가지 도리를 깨우칠 수 있으며 이 한가지 깨달음을 지키고 순응할 때 이루어진다는 이치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허(虛)는 학구열을 비롯한 마음에 생겨나는 욕심을 버린다는 말이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면 몸으로 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 장애물로 막힌다. 그렇게 되면 두 눈으로 보이는 천하가 만가지 물상으로 복잡해 얽히게 된다. 오직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만이 소중한 진리가 자연스럽게 몸으로 젖어 들게 됨으로 그 때야 비로소 정신이 맑아지게 된다.

정(靜)이란 고요히 바라보고 묵묵히 명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마음이 늘 허공에 떠 있고 늘 잡념이 많은 상태의 반대이다. 침묵하지 않는다면 고요해 질 수 없으므로 허는 정의 기본이 되며 정은 세상을 바라보고 관조할 수 있는 기본이 된다. 정관(靜觀)이야말로 자신의 감성과 혜안을 이용하여 세상의 이치를 체험하게 되는 길이며 이를 통해서 만물의 진상과 묘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바른 정관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운명까지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유가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수양이 도가의 근본이 되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유가의 수양은 더 높은 정의와 인격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함이지만 도가의 수양은 정신을 수양하여 천지가 운행되는 깊은 도리를 체험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자신을 천지 속에 묶어두지 않을 때만이 현실에서 가장 올곧게 서 있는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하나(一)로 묵묵하게 집중한다면 만물의 도에 의지하여 몸을 세울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수(守)란 이미 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견지하는 것을 말하며 넘치거나 부족함 없이 중심을 지키는 것이다. 만약 이 네 가지가 합일이 된다면 도가가 목표로 하는 최고의 깨달음에 닿을 수 있다.

부드러움으로 나라를 열고 부드러운 도리로 나라를 다스린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이는 중국인의 모든 처세관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부드러움 중에 강함이 있고 강함 가운데 부드러움이 있으므로 강함과 부드러움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결코 서로 대응되는 개념이 아니다. 예로부터 강함과 부드러움의 겸비는 중국인의 가장 이상적인 처세술이었고 도에서는 이를 막대 형식의 팔괘와 원형의 태극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위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국가 통치의 가장 높은 경지로 평가되어 왔다. 물론 어느 시대에서나 왕과 정치가들은 최소의 힘을 들이고 최대의 정치적 결실을 내길 원했다. 하지만 이는 실행해내기 힘든 일이다. 역사에서나 현실에서 보더라도 강한 자가 다수였고 부드러운 자는 소수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를 참고한다면 부드러운 통치가 효율이 더 높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자는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데 만물의 성장에 순응하고 그 본성에 기초하여 이치에 따를 것을 강조했다. 다른 사물과 결코 충돌하지 않는 물처럼 앞에 있는 사물에게 주어진 형태를 따라간다. 물은 비록 가장 연약한 물질이지만 모든 물체를 녹여 평평하게 만드는 위력을 지닌다. 실제로 최후까지 남아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자만이 타인을 배려하며 조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군주들이 큰 욕심을 부려 신하 위에만 군림하려 한다면 신하들은 진심으로 충성을 보이지 않게 되고 신하가 충성하지 않은 군주는 상하의 마음을 통합 시킬 수 없게 되므로 이런 조정에서는 한 나라를 평화롭고 부유하게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링청진
중국인민대학(中國人民大學) 교수로 중국고전문학 및 전통문화가 전공이다. 이 책은 해당분야에서 "중국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10대 서적"으로 선정되었다. 저자의 주요 저서로는 「변경(辨經)」, 「지전(智典)」 등이 있다.

출처 : 네오넷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