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장대한 소설에는 종종 화자인 ‘나’가 등장한다. ‘나’는 언제나 냉정하고 단호한 관찰자의 자세로 19세기 중엽의 러시아를 침통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악령]은 예외다. 이 뜨겁고 문제적인 소설에서 ‘나’는 자주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여 모든 사상과 욕망이 뒤엉켜 있는 당대의 러시아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한다. 이를테면 [악령]의 후반부, 의문의 대화재와 충격의 집단 살인의 전조로 진행된, 광란의 문화의 밤을 맞이하며 ‘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과도기에는, 어떤 사회에나 존재하고 있지만 어떤 목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상의 징후조차도 갖고 있지 못하며, 그야말로 그 시대의 불안과 초조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이런 부랑자들이 두각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부랑자들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거의 언제나, 일정한 목적을 갖고서 활동하는 그 많지 않은 ‘선두 주자들’ 무리의 구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그러면 선두 주자 무리들은, 그들 자신이 완전한 백치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는 이상,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쓰레기들을 전부 자기들이 편한 방향으로 멋대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도스토옙스키, [악령], 열린책들, 김연경 역
제국 러시아의 축구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21세기의 러시아는 도스토옙스키가 우려했던 바로 그 시절의 대혼란을 겪고 있다. 그 혼란의 핵심은 역시 정치, 경제를 움켜쥐고 있는 상층부의 일이겠으나 그 ‘불안과 초조의 부산물’은 광장에서, 뒷골목에서, 클럽에서 그리고 축구장에서 나타난다.
지난 2012년 6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공동 개최되었던, 유로2012 때 발생한 폭력 사태는 거의 러시아와 관련된 것이었다. 러시아 대 체코 경기 도중에 일부 러시아 팬 30여 명이 경기장에 난입해 진행 요원 4명을 집단 폭행했다. 그 사이에 일부 팬들은 체코의 수비수 테오도르 게브레 셀라시에게 거친 인종차별 야유를 퍼부었다. 그는 흑인이었다. 이에 유럽축구연맹(UEFA)은 러시아축구연맹(RFU)을 상대로 즉각 조사에 들어갔다.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도 바르샤바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폴란드의 A조 2차전은 경기 전부터 화약고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거리에서는 양국 축구팬들이 유혈 폭력 사태를 빚었다. 폴란드 당국의 허가 및 현지 경찰 6천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 행진을 하던 5천여 명의 러시아 팬들을 향해 폴란드 축구팬들이 공격을 하였고, 이에 쌍방 충돌로 최소 10명이 입원하고 200여 명이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격렬한 사태는 동영상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국제 대회의 주최자가 다른 나라에서 온 팬들의 안전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있다"며 즉각 강력하게 항의했다. 폴란드의 야첵 치호츠키 내무장관은 "러시아 난동자들은 강제출국을 당할 것이며 폴란드 입국 비자도 취소될 것"이라며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혔다.

유로 2012의 공동 개최국인 폴란드와 조별 리그 상대 러시아의 경기가 열린 경기장 안에 “This is Russia”라는 거대한 통천이 내걸렸다. 식민 지배 역사라는 아픔을 가진 양국의 관계가 축구를 통해 다시 한번 악화되는 순간이었다.
경기장 안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러시아 팬들은 연신 경기장 안으로 불꽃을 던지며 경기 진행을 방해했고, 폴란드 팬들을 자극하는 거대한 통천을 내걸었다. 통천에 적혀 있던 내용은 “This is Russia”. 예컨대 일본 팬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거의 한쪽 스탠드를 덮을 만한 통천에 “여기는 일본이다”라고 써붙이고 응원한다고 생각해보자.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폴란드와 우리에게 쓰라린 역사적 범죄를 저지른 나라들이다.
러시아는 프로이센(오늘의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세 차례에 걸쳐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었고, 2차 대전 때는 잔인한 양민 학살의 책임이 있으며, 냉전 시대에는 구소련의 영향력 아래 폴란드를 두었었다. 구소련 몰락 이후 폴란드가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다각도로 폴란드에 압력을 가해왔다. 이러한 역사적 상흔이 엄연한 상황에서 러시아 팬들은 폴란드 심장부에 “This is Russia”라는 통천을 휘날렸던 것이다. 결국 유럽축구연맹은 러시아 축구연맹에 12만유로(약 1억 7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러시아의 유로2016 예선 승점을 6점 삭감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해마다 11월이면 러시아의 주요 도시는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11월 4일은 ‘러시아 국가통합의 날(National Unity Day)’이다. 이날이면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제정 러시아’ 때의 휘장을 내걸고 “오늘의 이민자들이 내일에는 점령자가 된다”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인다.
그들이 타깃으로 삼는 것은 대도시의 비러시아 이민자들, 남부 캅카스, 체첸, 그루지야 등지의 이슬람 교도들이며 극동 지역 하바로브스크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 극동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40여 명의 스킨헤드들이 아마추어 축구팀들을 공격했다. 물론 어떤 사건들은, 기나긴 역사적 과정에 따른 쌍방 과실의 측면도 있다. 2010년, 이슬람계 러시아인 6명에 의해 러시아 축구 팬 한 명이 살해된 사건이 그렇다. 푸틴은 자주 “러시아는 다인종ㆍ다종교ㆍ다문화 국가”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차르(제정 러시아의 황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가 이를 실질적으로 안착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사태는 2013년 10월, 수도 모스크바 남부 서(西)비률료보 지역의 충돌이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 청년이 남부 캅카스 지역 출신으로 추정되는 한 청년의 칼에 찔려 살해된 것에 항의하는 러시아 주민들의 대규모 집회 과정에서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400여 명이 연행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는 언제나 축구가 연관되어 있다. 축구는, 적어도 러시아에서는 다양한 갈등이 폭발하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 축구장 안에서, 그 바깥의 광장과 거리에서, 경기 전후의 카페와 클럽에서 양측 팬들은, 혹은 주축이 되는 러시아 스킨헤드들은 사건을 일으킨다. 방금 언급한 유혈 시위 역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과 프로 축구 팬들 약 5백여 명이 주도했다.

모스크바 킴키 아레나에서 열린 2013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에서 맨시티의 야야 투레가 경기 도중 심판에게 가서 항의하고 있다. CSKA 모스크바의 일부 홈 관중들이 그를 향해 원숭이 소리를 내며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 경기 후 맨시티는 UEFA에 정식으로 이 문제를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2013년 10월 23일, 모스크바를 연고로 하는 CSKA 모스크바와 맨체스터 시티와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3차전. 모스크바의 팬들은 맨시티의 간판 선수이자 규칙이 정한 범위 내의 강력한 파이팅 말고는 매우 우아하고 격조 있는 축구를 구사하는 맨시티의 야야 투레에게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며 인종차별 행위를 했다. 투레는 심판에게 거듭 문제 제기를 했고, 경기 후 맨시티는 UEFA에 정식적으로 조사를 의뢰했다. 이러한 경향과 사건들은 과연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2018년 월드컵이 겉으로나마 화합의 장이 될 것인지, 아니면 세계의 모순과 러시아의 갈등이 증폭되는 격전장이 될지 의문스럽게 만든다.
러시아 축구와 서포터즈 문화
19세기 후반, 차르는 하층 시민들과 소수 인종들이 축구를 즐기는 것을 가로막았다. 암살과 혁명의 위협이 될 만한 집단 놀이 문화를 일체 금지시켰던 것이다. 축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귀족 학교 일부에서 군사교육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축구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04년경이며 이는 러시아의 대도시에 근대적인 산업이 본격화된 시기와 맞물린다. 1912년 러시아축구연맹이 결성되었고, 그해 올림픽에 대표팀을 파견하였으며 FIFA에도 가입했다.
러시아 축구 대표팀의 전성기는 5,60년대. 이 시기 구소련의 대표팀은 월드컵 준준결승까지 4회 연속으로 진출했으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는 준결승에도 올랐다. 어떤 점에서 러시아 축구는 레프 야신의 은퇴와 함께 무기력해졌다. 10년 가까이 진행된 중동전쟁 참여, 구소련의 급격한 붕괴, 연방 해체 과정의 국지전 등은 축구 문화의 건실한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러시아연방공화국 출범 이후가 되는 1992년에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면서, 국가 대표팀 중심의 축구 문화가 도시 클럽 중심으로 변화ㆍ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오늘의 러시아 축구가 싹을 틔웠다. 러시아 프로 축구는 16개 팀으로 구성된 최상위 프리미어리그를 정점으로 하여 1부 리그 (22팀), 2부 리그(81팀) 등 3개의 프로 리그와 1개의 아마추어 리그(147팀)로 구성되어 있다.
서포터즈 문화 역시 구소련 연방의 해체 이후에 생성되었다. 그 이전까지, 사회주의 권력이 강력했던 시기에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 문화 양식이기도 한 서포터즈 문화가 크게 발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개혁, 개방 그리고 구소련의 붕괴에 따라 소비에트 국가 체제 중심이었던 축구 문화의 단일성이 주요 도시로 분할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도시를 중심으로 서포터즈 문화가 활성화되었으며, 모스크바를 연고지로 하는 스파르타크, 디나모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제니트가 대표적인 클럽으로 성장하였다.
모스크바의 스파르타크는 1992년 리그가 새로 출범한 이후 9번이나 우승했으며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6년 연속 러시아 축구를 제패했다. 러시아 축구를 이끌고 있는 만큼 팬들의 서포팅 또한 강력하다. 2013년 11월에는 스파르타크 팬들이 러시아컵 32강전에서 소요와 폭력 행위를 벌여 2경기 무관중 징계 처분까지 받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연고로 하는 클럽 제니트는 1925년에 창단된 팀으로, 러시아 최고의 현대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imitry Shostakovich, 1906~1975)가 열렬히 성원했던 팀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시대의 답답함을 축구장에서 풀었고, 스탈린 사망 이후에는 틈만 나면 경기장을 찾았다. 혹시 그는, 규칙 위에서 완전히 규칙을 뒤흔들어버리는 축구의 미학을 통해 그 자신의 난해한 음악 언어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현재 세계 5대 천연가스 생산 그룹인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이 제니트의 구단주이며 이로 인하여 수십 년 동안 부침을 거듭하다가 최근 몇 해 동안 전성기를 맞고 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던 2007년에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때 김동진과 이호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1984년 구소련 연방 챔피언십 우승 이후 23년 만의 쾌거였다. 그후, 클럽 역사상 최초로 UEFA컵 2007-08 우승도 차지했으며 2008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1로 제압하고 UEFA슈퍼컵을 차지하기도 했다.

2008년 5월 14일 스코틀랜드 레인저스를 꺾고 UEFA컵 우승을 차지한 제니트. 맨 앞줄 가운데에 김동진 선수가 보인다.
이렇게 발달하기 시작한 러시아의 축구 및 서포터즈 문화는 서유럽에 비하여 러시아 사회의 여러 조건들(경제, 지리, 종교 등)에 의해 대표적인 청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스포츠 말고도 ‘다양한’ 청년 문화, 하위 문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있다. 굳이 축구나 야구가 아니더라도 자기의 문화적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축구가 그 나머지 문화적 욕망을 흡수하는 장이 된다. 단순히 ‘축구 팬들로 구성된 응원단’이 아니라 러시아 청년들이 거의 모두 참여하는 ‘청년 문화’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서포터즈 문화 안으로 다른 문화들이 들어오는 양상이다. 체제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축구장은 그들의 열망을 품어준다. 극우 파시스트든 순수한 스포츠팬이든 축구장이 그 열망을 감싸안아준다. 대개의 나라들이 그렇듯이 러시아 역시 군사적 팽창, 정치적 혼란, 경제적 위기, 사회 불안 등을 겪게 되면 그들의 축구 서포터즈 문화는 극우 파시스트적 경향을 띤다. 지금 러시아가 그런 상황이다.
제국 러시아의 풍요와 빈곤
2007년 12월 ‘러시아 어문학교사 국제협회’가 러시아 최초로 실시한 ‘올해의 말’에 선정된 단어는 ‘글래머(glamour)’였다. 이 단어는 흔히 ‘성적 매력이 넘치는 여성’을 가리킬 때 쓰이지만, 막강한 부와 화려한 신분, 혹은 수익률이 좋은 주식이나 한창 성장하고 있는 경제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러시아는 이 모든 뜻을 다 합한 의미에서 ‘글래머 시대’를 구가하는 중이다.
러시아는 지금 ‘제국’이라는 19세기적 환상을 꿈꾸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막대한 과소비와 거대한 건축물, 축구장의 과잉 열기는 모두 ‘글래머 현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푸틴이 있다. 2000~2008년까지 통치한 후 잠시 메드베데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사실상의 막후 실권자인 총리가 되었다가 2012년 대선으로 다시 크렘린궁에 앉은 그는 개헌을 통해 2018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한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막강한 권력 체제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금욕주의와 가난이 지배했었고, 1990년대에는 구소련 패망 이후의 혼란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암울하고 궁핍한 이 시기를 거쳐 이제는 푸틴으로 상징되는 막강한 제국 권력과 로만 아브라모비치(첼시 구단주)로 대표되는 신흥 부자들이 주도하는 풍족하고 화려한(듯한) 정치적 표현과 문화적 욕망이 ‘글래머 시대’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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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러시아의 글래머 시대’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출처: (cc) kremlin.ru at en.wikipedia.org> 2 러시아 제1의 석유 회사를 운영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FC의 구단주를 맡고 있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출처: (cc) Marina Lystseva at commons.wikimedia.org> |
현재 러시아는 ‘유라시아주의’를 거의 국가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발트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를 다시 한번 확실한 제국의 품 안에 두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푸틴 대통령은 극동ㆍ시베리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신(新)동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과 흡사한 구소련권 경제통합체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창설까지 주도하고 있다. 유라시아주의 시대를 맞아 국가의 지원을 받은 영화들 또한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발트해의 종교 문명과 중앙아시아의 문화 풍습, 극동의 다양한 지리 문화가 어떤 식으로든 ‘제국 러시아’와 연관되는지를 보여주는 이들 영화들은 제국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의 위상을 그려낸다.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예언
러시아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이 아직은 가난한 형편임에도, 거대 제국과 신흥 부자의 풍요로움을 내면화하려고 한다. 화려한 디자인의 옷들, 과시적인 헤어스타일, 거품처럼 일기 시작한 부동산 열기, 호화롭게 장식된 건물들이 러시아의 주요 도시를 뒤덮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의 삶도 그러한가. 여기에 아픔이 있고 모순이 있다. 실제로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면 축구장에서 그 많은 폭력이 발생할 리가 없다. 풍요롭고 화려하고 넉넉한 삶은 신기루처럼 떠 있을 뿐 실질적인 삶의 개선은 여의치 않다. ‘글래머’가 이미 정치적(수시로 과시하는 푸틴의 제국 권력)으로나 문화적(풍요를 약속하는 미디어들)으로 내면화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모스크바 곳곳에서 비슬라브계와 이민자들을 향한 인종차별, 그로 인한 시위와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축구장 역시 인종차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때 불만이 생긴다. 왜 나는? 혹시 저 풍요의 제국에 나만 홀로 탈락한 것일까? 그러나 그 불만이 체제로 향하면 금세 진압을 당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푸틴 3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성 공연을 펼쳤던 여성 펑크 록그룹 ‘푸시 라이엇(Pussy Riot)’ 멤버들은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래서 눈을 잠시 곁으로 돌려본다. 이민자들이 보이고 비슬라브계 러시아인들이 보인다. 이제 공격 대상이 정해졌다. ‘저 녀석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줄고 있잖아?’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공격한다? 아! 옳거니 축구장! 그리하여 그들은 축구장으로 몰려간다. 심지어 남의 나라 축구장까지 몰려간다. 가서,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 사태를 이미 도스토옙스키는 19세기 중엽에 “과도기에는 그 시대의 불안과 초조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이런 사상의 부랑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라고 [악령]에서 예언했던 것이다. 다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들어보자. 이 무시무시한 소설의 끝부분에서 거의 미치광이가 되다시피 한 러시아의 스승 스쩨빤 뜨로피모비치는 신약 성경 ‘누가 복음 8장’의 그 유명한 돼지 떼 이야기로 당대의 러시아 상황과 참다운 미래를 예언한다. 19세기 스승의 고견을 지금 막 축구장에 들어서면서 뭐라도 거친 소리를 내뱉으려는 러시아의 젊은 서포터스즈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환자에게서 나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 그 악령들. 이건 모두 독이고, 전부 전염병이고, 하나같이 불결한 것이고,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환자, 즉 우리 러시아 속에서 수세기 동안, 수세기 동안 우글거렸던 온갖 마귀들과 마귀의 새끼들입니다! 그래요. 내가 언제나 사랑해 왔던 그 러시아라고요. 그러나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의지는 그렇게 더 높은 곳에서부터, 이 광기 어린 마귀 같은 것 위로, 바로 러시아 위로 그늘을 드리울 테고, 그러면 이 모든 마귀들이, 온갖 불결함이, 표층에서 곪기 시작한 온갖 이 추잡한 것들이 밖으로 나올 테고……. 그놈들이 직접 나서서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할 겁니다. 사랑스러운 이여. 당신은 훗날에야 이해하시게 되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나를 아주 흥분시키는군요…… 당신은 훗날 이해하시게 될 거에요…… 우리 함께 이해하게 될 겁니다.”도스토예프스키, [악령], 열린책들, 김연경 역
쿠이아바, 우리 팀의 첫 번째 경기가 열리는 도시

브라질 중서부 마투그로수 주의 주도인 쿠이아바의 풍경. 금과 다이아몬드를 노린 유럽 침략자들에 의한 개발의 역사가 쓰여진 이곳에서 우리 대표팀은 조별 리그 첫 번째 경기를 치른다. 경기가 열릴 아레나 판타날은 한창 공사 중이다.
우리 대표팀과 러시아 대표팀은 2014년 6월 18일 아침 7시(한국 시간), 브라질 쿠이아바에서 만난다. 쿠이아바는 기나긴 파라과이강의 한 지류인 쿠이아바강을 끼고 있는 도시로, 1718년 유럽의 사금(砂金) 침략자들이 건설하였다. 인근 콘보강과 푸라이냐 강가에서 금광이 발견된 이후 개발이 시작되어 현재의 쿠이아바가 형성되었다. 서구의 침략자들은 이곳을 ‘브라질의 시카고’로 만들기 위해, 브라질,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을 잇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삼으려 했으나 여러 악재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쿠이아바 부근에서는 지금도 금과 다이아몬드가 산출되는데, 이것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했다. 이 광물질 때문에 도시가 창건되고 번성하였으나 때로는 이 광물질을 차지하기 위한 학살이 벌어졌던 것이다.
브라질 아마존 지역에서 광물 채굴이나 농장 개발, 벌목 등을 하려면 개발 사업 지역에 원주민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살고 있을 경우, 이 합법의 탈을 쓴 침략자들은 원주민을 학살하는 방식으로 사업권을 따내려 한다. 쿠이아바가 주도인 마투그로수주(州)의 북부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은 거의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며 원주민 부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2013년 11월 8일, 쿠이아바에서는 48개 부족이 참가하여 문화 의례와 놀이를 선보이는 ‘신성한 불’ 축제를 펼치기도 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유지해 나갈 때 월드컵은 진짜 ‘지구촌 한마당’이 될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1975년판 표지.
인간 사유 방식의 보이지 않는 근원이 되는 구조의 힘을 밝힌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는 20대 중반이던 1934년에 브라질 상파울루대학 사회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아마존 원주민들을 직접 대면 조사하게 된다. 1955년 그는 이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현대의 고전 [슬픈 열대]를 발간하였다.
그가 아마존 원주민을 연구하던 시대는 브라질이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시작하던 무렵이다. 영국계 회사가 도로와 철도를 깔기 시작하면서 근대적 도시들이 창건되었다. 쿠이아바 역시 이때 한번 더 도약하게 된다. [슬픈 열대]를 보면 레비스트로스가 보로로 족(族)을 조사하기 위해 교통의 중심지인 쿠이아바에 들르는 대목이 있다. 그에 따르면 쿠이아바 인근의 원주민들이 찾아낸 금덩이를 서양인들은 손쉽게 착취하였으며 부족 여성들은 강력한 지배를 받는 곳에서 흔히 발생하는 비극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한 번은 부상을 입은 원주민을 치료하기 위해 숲 속 마을에서 쿠이아바까지 비행기로 이송한 일이 있었다. 나중에 그의 부모를 만났는데 그들은 화를 냈다. ‘하늘 한가운데에 자기의 아들을 놓아두는 야만적인 행위’ 때문이었다. 하늘 한가운데에 사람을 놓아두는 것은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마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그의 [슬픈 열대]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성찰로 시작한다. 우리 모두가 남미의 역사와 문화, 브라질의 과거와 오늘, 그들의 삶과 축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꼭 생각해야 할 성찰이다.
“기억의 찌꺼기들, 예컨대 ‘오전 5시 30분, 우리는 이국의 열매를 팔기 위해 선체를 따라서 작은 선대를 이루며 몰려드는 상인들을 보면서 레시프 항에 정박하러 들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보잘것없는 추억들을 적어 놓기 위해서 펜을 들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도 이런 종류의 책들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여행기, 탐험 보고서, 또는 사진첩의 형태로 된 아마존, 티베트, 아프리카 이야기들이 서점을 뒤덮고 있는데, 이 책들이 주로 인기만을 염두하여 쓰여지고 또 편집되었기 때문에 독자는 그 속에 담긴 증언의 가치를 식별할 길이 없는 것이다.”

- 글
- 정윤수 축구칼럼니스트
- 1995년 문화비평지 계간 [리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스포츠와 문화 전반에 걸쳐 연구 비평 작업을 해왔다. 인문학 단체 [풀로엮은집]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kbsn스포츠, 마산mbc 등에서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저서로 [축구장을 보호하라], [클래식, 시대를 듣다], [인공낙원 - 현대도시와 삶에 대한 성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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