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식 저소식

딸 성폭행한 남편 선처호소한 사연

position 2009. 11. 18. 23:30
 
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편을 선처해달라는 부인의 탄원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기막힌 사연의 내용은 이렇다. 충북 충주에서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A씨와 B(39·여)는 지난해 2월부터 함께 살림을 꾸렸다. 이미 10살 난 딸 C양과 여섯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던 B씨는 파산신청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였다. B씨는 A씨를 만난 뒤 직장을 정리하고 함께 식당을 차렸다.

올 초 B씨는 A씨의 아기를 가지게 됐고, 당시 영업 부진으로 빚에 시달리던 A씨 부부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식당을 정리하고 상경했다. 부부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옥탑방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지난 7월 새벽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A씨는 B씨와 말다툼을 한 뒤 PC방에 머물면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속이 탄 B씨는 A씨를 달래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에게 들려 보냈다. 하지만 A씨는 아들에게는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는 C양을 인근 여관으로 데려가 술을 마신 뒤 성폭행했다.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곧바로 A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지난 9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한 달 뒤 딸을 출산한 B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월 40만원의 정부보조금 외에는 특별한 생계 수단을 가질 수 없었다. B씨의 양친은 B씨가 어렸을 때 모두 사망했고 경제적 도움을 주거나 아이들을 맡아줄 여유가 있는 형제 자매 또한 없었다. 고민 끝에 B씨는 항소심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죄에 대한 대가로 네 사람의 인생이 달려 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비참하게도 의식주 때문에 고생합니다.

어미된 자로서 딸아이의 고통과 상처를 왜 모르겠습니까? 큰 아이에게는 이미 죄를 지어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도 제 자식입니다. 이 아이에게도 죄를 지으면 어미된 자로써 어찌 살아가야 합니까? 지금 딸아이는 잘 이겨냈습니다. 오히려 엄마인 저보다도 잘 극복했습니다.

힘들어 고통스러워할 때 저를 위로한 것이 딸아이였습니다. 제발 가정을 지켜주십시오. 상황이 이러니 삶의 무게가 너무 힘들어 쓰러질까 합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 뒤에 행복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새 출발하게 도와주십시오."

B씨의 고민이 깊었던 만큼 항소심 재판부의 고심도 컸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다. 때문에 한 사람의 죄를 논함에 있어서 원리를 이해하고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 이상으로 피고인과 피해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별적인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삶에 대한 지혜가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법원으로서는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남편을 선처해달라는 B씨의 심정이 어떠한지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A씨가 실제로 사회로 복귀해 진정으로 가족들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B씨가 A씨에게 희망을 걸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법률 전문가, 성폭력 사건 전문가, 심리학자는 아닐지라도 세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엄마로서 본능적으로 무엇이 가장 최선의 해결방안이 될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13세 미성년자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현행법상 법정 최하한선인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을 정하는 데에서도 깊은 고심의 흔적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양형기준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도 지적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처벌의 하한을 징역 7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심신미약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징역 3년6월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고 집행유예 선고는 법률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살인죄의 경우 처벌의 하한을 징역 5년으로 정함으로써 구체적인 여러 양형 요소를 참작해 집행유예 처분을 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정책과 국민 법 감정상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자에게 높은 처벌이 요구된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어떠한 경우라도 집행유예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입법의 타당성에 대해 이 법원은 다소의 의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법 감정은 사회의 이목을 끄는 특정사건의 발생을 전후해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다"며 "특정 시점의 법 감정에 치우쳐 특정 범죄에 대한 형벌 수준을 지나치게 높이는 경우에는 형벌체계를 뒤흔들고 다른 범죄에 대한 양형에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