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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철학자’ 강신주 “정부나 대기업을 놔두고 왜 나와 싸우려고 하느냐”

position 2014. 2. 17. 23:04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강신주씨(47)는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철학자다. 인문교양서 판매가 오랜 침체에 빠져 있음에도 출간하는 책마다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과 글이 독자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3일 철학자로는 드물게 황금시간대 공중파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뒤 그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호기심이나 비판의 강도에서 모두 정점에 이르렀다. ‘아이돌 철학자’ ‘하나의 현상이 된 문화권력’으로까지 불리는 강씨를 지난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에 공격을 많이 받아 답답했다. 나도 발언하고 싶다”며 말을 쏟아냈다.

    -<힐링캠프> 출연 이후 어떤가.

    “방송이 나가면 일정한 파장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2~3m 높이의 파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20~30m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과거 발언들 때문에 최근 많은 비판을 받았다.

    “완결된 글을 써놨기 때문에 상관없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안 하는 이유는 문맥이 없는 글들이 올라가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2012년 경향신문 칼럼에서 ‘보수적인 사람은 문맥을 읽으려고 하지도 않고 읽을 수도 없다’고 쓴 적이 있다. 정치적인 신념이 어떻든 문맥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보수고 보수는 기득권 싸움을 한다. 강신주가 유명해지니까 공격해서 기득권을 얻으려는 거 아닌가. 문맥을 벗어나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대응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맥 이야기는 변명일 수 있다. 독자들은 천차만별이다. 글을 많이 본 사람들에게는 노숙인 발언이 전혀 문제가 안될 것이다. 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대해 말한 것이지 노숙인의 발생에 대해 말한 게 아니다. 그런데 그 발언만 떼내 비판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안타깝다. 나무가 커지면 그림자가 짙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나무를 반으로 쪼갤 수는 없다. 그건 자기검열이다. 정치적 이유에서든 호기심에서든 내가 사람들이 씹을 수 있는 공통의 소재가 된 것 같다.”

    -당신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다 읽어봤나.

    “잘 안 본다. 그런 글들은 내 글에 영향을 미친다. 글쟁이라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나에 대한 칭찬의 글도 잘 안 본다. 사람들이 나를 오해해서 욕을 하거나 비판을 하는데 몇 년 지나면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할 거다. 심한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어쩌겠나. 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초래한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나는 이런 반응만 요구해’라고 할 수는 없다.”

    -처음 구설수에 오른 게 지난해 7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냉장고를 없애라’고 썼을 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우리를 자본주의에 옭아매는 게) 냉장고뿐이겠나. 내 집에도 냉장고가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자본주의에 얽매여 있는지, 자본주의의 유혹을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지 보여주기 위해 집집마다 있는 냉장고를 예로 든 것이다. 큰 문제 앞에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지적하고 싶었다. 인간적 삶을 위한 가치에 대립되는 것, 너무나 강한 사적 소유의 상징으로 냉장고를 동원한 것이다. 그랬더니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스마트폰을 공격하면 아무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냉장고에 대해 말하면 문제가 된다. 냉장고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물건들 중에서도 무반성적 영역이었던 거다. 작은 물건 하나에 대해서만 숙고해도 자본주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게 인문학자의 역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냉장고를 버리고 살 수 있나.

    강연을 하면 항상 물어본다. ‘당신은 그렇게 살 수 있나?’ 못 산다고 얘기한다. 매번 ‘버려야 하는데 쓰고 있네’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못 살면, 내가 말하는 게 그른 게 되느냐는 것이다. 옳은 건 옳은 거다. 철학자의 역할은 옳은 것들, 반성해 봐야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나를 욕해도 된다. 그러나 내가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옳다는 걸 부정하진 말아 달라.’ ‘당신은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내가 안 하면 안 할 건가. 철학자가 사랑에 대해 말한다고 사랑이 완벽해지는가. 인문학자나 철학자는 옳은 것을 이야기하려고 할 뿐이다. 그것은 강신주가 그렇게 살든 못 살든 옳은 것이다. 그 정도 안목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담론을 버릴 때 이렇게 버린다. ‘옳지만 실천하기 힘들다, 실천하기 힘드니까 이상적인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옳은 것은 그른 것이다.’ 경향신문에 ‘비상경보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는데 비상경보기가 뭔가.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당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와 연대와 공동체적 삶이 와해되고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냉장고도 그 맥락에서 한 말이다. 내가 쓴 칼럼들을 다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칼럼에 대한 비판적 반응들이 오독의 산물이라는 건가.

    “오독이라고 하진 말자. 나도 대학원 다닐 때 철학자들을 공격했다. 공격할 때는 부분을 가지고 공격하는 거다. 좋다, 괜찮다. 내가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먼저 염장을 지르는 선생이 있지 않나. 나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오독이라고 하지 말고 바로미터라고 하자. 독자들이 자신을 부수는 하나의 바로미터로 썼으면 좋겠다.”

    -노숙인이 수치심 없는 사람이라는 발언도 큰 논란을 낳았다.

    “노숙인의 발생에 대해 말한 글이 아니다. <상처 받지 않을 권리>에서도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이미 얘기했고 강연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보자. 미셸 푸코의 말이다. 어떤 체제의 지배는 개인의 내면과 생활에서 관철된다. 그래서 체제와 싸우는 전선은 개인의 내면에 그어져야 한다. 체제의 지배에 길들여지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거기서부터 주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게 푸코의 입장이다. 노숙인 이야기는 <감정수업>이라는 책의 한 부분이다. <감정수업>의 취지는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감정표현이 자유롭지 않으니, 감정표현이 자유롭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사회가 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사회가 좋아지면 감정표현이 자유롭게 되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누가 해줄 거냐, 정치가들이? 구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결국은 정치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간다. 나는 원칙적 민주주의자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으로 서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노숙인이 왜 발생하는지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노숙인이 어느날 ‘사회가 왜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가’라고 생각하고 그 수치를 되갚아주기 위해 일어서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 사회가 변한다. 위험한 이야기라는 건 안다. 그래도 말을 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구조 탓을 하는 건 진보의 순진한 공식이다. 보수는 ‘구조가 무슨 상관이냐, 너희들이 열심히 하면 돼’라고 말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진보는 구조, 보수는 개인을 말한다. 이 도식을 알면서도 썼다. 그렇다면 구조는 누가 바꾸나. 노숙인들은 구조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인문주의자의 주어는 ‘나’다. 인문주의자가 가장 싫어하는 건 모세 같은 사람이다. ‘나를 따르라’고 말하는 사람 말이다. 인문주의자는 사람들 옆에 있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아서 노숙인이 됐다고 말한 게 아니라 당당하게 일어서려면 감정이 살아나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반자본주의적 주체로 거듭나려면 일차적으로 주인으로 서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이 수치심이다. 내가 말하는 수치심이라는 건 자본에 대한 분노다. 내 책과 강연의 기본 입장은 스스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당이 집권하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구조가 바뀐다? 이건 웃기는 모세주의적 발상이다. ‘나를 따르라’는 건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다. 세상에 어떤 독재자가 있든 내가 강하게 서야 한다. 그 정신에 입각해서 <감정수업>을 썼다. 나는 당사자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감정을 가지라는 거다. 감정을 갖는 게 민주주의의 토대다. 분노가 없으면 어떻게 정권과 싸우나.”

    -당신이 문화권력이라고 생각하나.

    “비판을 위한 비판의 단어인 것 같다. 내 모든 행위의 목적은 타인들의 사랑과 자유를 존중하고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벙커원에서 2년쯤 ‘다상담’을 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내게 너무 기대는 걸 느꼈다. 그래서 ‘다상담’을 그만뒀다. 내가 강연을 하는 사이에 필요악처럼 내게 무슨 권위가 생길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에게 무슨 지침을 내리나? 나는 산파일 뿐이다. 내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긴 한다. 나는 그 역할만 하고 빠져나온다. 문화권력이라는 말을 영향력이 있다는 뜻의 레토릭으로만 쓴다면 모르겠는데, 그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내가 문화권력이라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내게 이득이 생겨야 한다. 지난해 벙커원에서 마지막 상담을 했을 때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했다. 중간중간 담배를 세 갑이나 피웠다. 이런 게 권력자의 모습인가. 강연할 때 정해둔 원칙이 있다. 내가 힘든 만큼 사람들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끝나고 나서 내 마음 속에 ‘나 똑똑하지 나 철학자지’, 이런 감정만 남는다면 실패한 거다.”

    -당신을 싫어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보수세력이 나를 공격하는 건 괜찮다. 그런데 진보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공격할 때 내가 받은 느낌은 정치 권력과 싸우지 왜 나와 싸우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안타깝다. 글에서 내가 진보세력을 공격한 적이 없다. 정부나 대기업을 놔두고 왜 나를 공격해서 논객 구실을 하려는지 의아하다. 고양이를 잡기보다는 쥐들 중에서 대장 역할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단행본 26권을 냈다. 책을 하나하나 내면서 여기까지 왔다. 갑자기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진 게 아니라 7~8년 동안 대중강연을 하면서 단련됐다. 내가 뜨니까 내 위에 올라와서 깃발을 꽂으려는 것 같다. 나를 무너뜨리려면 지금까지 내가 쓴 책들을 모두 공격하고 올라와야 한다. <힐링캠프> 출연 이후에 방송국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여럿 왔다. 그러나 교양강좌나 책 프로그램 출연 이외에는 다 안 한다고 했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면 왜 그런 제안을 물리쳤겠나.”

    -상담할 때 왜 그렇게 상대방을 몰아붙이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모욕으로 느끼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자기 속내를 50%만 드러내면 나도 50%만 말한다. 90%를 드러내면 나도 90%를 말한다. 상대방이 말하는 수위에 맞춘다. 그런데 제3자가 들으면 세게 보일 수 있다. 그냥 멋지게 보이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세게 할 필요도 없다. 내 상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에너지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을 번지 점프대 위에 세운다. 나는 문화권력처럼 이리로 가라거나 저리로 가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은 이 자리에 있다.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뛰어내리지 않는다고 비겁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다만 뛰어내리지 못한다면 비겁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라고만 한다. 내가 상담했던 사람들 중 불쾌해하거나 화를 낸 사람은 없다. 그들은 알고 있다. 혼자 끙끙거렸는데 강신주는 결단의 순간까지 함께 와줬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그들에게 집중하고 함께 손을 잡고 가주는지를.”

    -충격 요법으로 상대방을 몰아붙인다는 점에서는 자기계발 강사 김미경씨와 비슷하지 않나.

    “내가 (김미경씨처럼) 무슨 위로를 했나? 나는 위로하지 않는다. 나는 욕먹을 짓을 하고 다닌다. 충격 요법이 아니다. 애정이 있는 것이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하는 것이다. 나는 외과의사처럼 냉정하게 엑스레이를 찍어서 어디에 암세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어쩔 건지를 묻는다. 힐링은 흐릿하게 보여준다. 나는 또렷하고 냉정하게 보여준다.”

    -심리상담과 뭐가 다른가.

    “서양의학의 상담에는 약물 치료가 포함된다. 정신분석은 약물 치료를 하지 않는 대신 과거의 트라우마를 캐낸다. 내가 정신분석을 싫어하는 건 지금의 고통을 과거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데 반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주인으로 서서 행복하고 당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주인으로, 주체로, 강하게 서야 한다. 주체는 선택을 하는 사람,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선택지를 명료하게 보여줬는데도 비겁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대신 비겁한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정신분석처럼 과거로 들어가진 않는다. 현실에서 강한 주체가 되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내 입장이다. 그래서 ‘다상담’에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유가 혼자 서라는 거다. 상담할 때 나는 그 사람의 역사와 그 사람의 고통을 그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면서 알아간다. 그러고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지점에서 한 걸음 더 갈 수 있는 선택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연을 열심히 해온 것은 인문학을 대중화하기 위해서였나.

    “대중화라는 용어는 이상하다. 대중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야 한다. 초등학생부터 지식인 그룹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사용하는 소재와 말투가 다 다르다. 녹음기처럼 나 혼자 떠들어대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말이 이해되길 바란다. 공감이든 반박이든 피드백이 있기를 원한다. 대중화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결국 개인의 문제, 자아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당신의 말과 글은 자기계발이나 힐링 담론과 비슷하지 않나.

    “체제에 순응하는 주체와 체제와 맞서 싸우는 주체는 다르다. 나는 자기계발 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열심히 일해서 순응적인 노동자가 되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주체로 서라는 거지. 어떤 구조에서든 인간은 적응해서 살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라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자기계발이라고 받아들이면 너무 무식한 거다. 자발적 노예가 되는 걸 주체라고 하면 안된다. 나는 결혼한 사람에게도 배우자가 아니면 먹고살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이혼하라고 말한다. 나는 강한 주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런 주체가 서면 구조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그 정도는 돼야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강연을 해왔고, 최근의 강연은 대개 상담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철학이 고민 상담인가.

    “아니다. 철학자는 선택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철학은 인문학이다.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보여주고 그들이 무엇을 선택하는지 명료하게 보여준다. 상담의 목적은 상대방을 나와 같은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일종의 산파술이다. 이걸 부정하면 공자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도 부정해야 하고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시민들 간의 논쟁도 부정해야 한다. 공자가 제자들을 얼마나 아프게 했나. 그런데 이걸 문제 삼는다면, 당혹스럽다. 철학의 본령은 대화다. 변증법이다. 그들을 포섭해서 내가 모세 역할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을 주체로 세우고 싶다는 게 내 꿈이다. 이게 철학이 아니라면 뭔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은 뭔가.

    “나는 저자다. 올해부터는 저술에 집중할 생각이다. 육체적으로 지쳤다. 지난해에 위경련을 심하게 앓았다. 나는 철학자이고 인문서 저자다. 연예인이 아니다. 유명해지는 걸 꿈꾸지 않는다. 올해는 정치철학에 대한 책을 내고 내년에는 제자백가 시리즈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힘이 있을 때 하고 싶다. 몸이 약해지면 초탈해버릴 것 같다. 상담이라는 형식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건 올해 상반기 안에 거의 정리할 생각이다. 적어도 상담 형식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했다. 더 한다면 유명세를 이용해 장사를 하는 것밖에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한창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는데 왜 그만두려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만둘 때가 됐다.”

    -저술과 강연의 궁극적인 목적은 뭔가.

    “시인 김수영은 시의 무용론에 대해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모두 철학자가 돼 강신주가 불필요해지면 좋겠다. 나는 누군가에게 장미가 되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냐고 물을 뿐이다. 당신이 개나리라면 개나리로 피라고 말한다. 꼭 장미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만 안다면, 개나리로 당당하게 피어도 된다.”